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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 기구 설립 이전 기업 주도 규격의 역사적 희귀성

📑 목차

    표준화 기구 설립 이전 기업 주도 규격이 왜 역사적으로 희귀한지 분석합니다. 합의 이전의 기술 규격이 형성한 산업 권력 구조와 재현 불가능한 가치에 대해 심층적으로 해석합니다.

    표준화 기구 설립 이전 기업 주도 규격의 역사적 희귀성

    표준 이전의 세계: 규격은 합의가 아니라 ‘선점’이었다

    오늘날 기술 표준은 ISO, IEC, IEEE 같은 표준화 기구를 통해 합의와 조율의 산물로 탄생한다. 그러나 나는 이 구조가 역사적으로 매우 최근의 현상이라고 본다. 표준화 기구가 본격적으로 기능하기 이전, 규격은 합의의 결과가 아니라 기업의 힘과 시장 선점의 결과였다. 즉, 표준이란 개념 자체가 존재하기 전에는 “누가 먼저 시장을 장악했는가”가 곧 규격을 결정했다.

    이 시기의 기업 주도 규격은 기술적 우월성보다도 생산 능력, 유통망, 브랜드 신뢰, 자본력에 의해 확산되었다. 전기 플러그 형태, 철도 궤간, 초기 통신 규격, 컴퓨터 인터페이스 등은 모두 특정 기업이나 컨소시엄이 주도해 사실상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 규격들을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이 아니라, ‘권력 기반 규격(power-based specification)’이라고 부르고 싶다.

    중요한 점은 이 규격들이 제도적 검증이나 다자 합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여러 규격이 병존했고, 국가·지역·기업마다 전혀 다른 기술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이 혼란스러운 상태야말로 표준화 이전 시대의 본질이며, 바로 이 점이 기업 주도 규격의 역사적 희귀성을 만든다.


    기업 주도 규격의 본질: 기술보다 ‘통제권’

    표준화 이전 기업 주도 규격의 핵심 가치는 기술적 완성도보다 통제권에 있었다. 나는 이 시기의 규격을 “기술 문서가 아니라 사업 전략의 연장선”으로 본다. 규격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연결 방식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행위였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AT&T의 통신 규격, IBM의 메인프레임 인터페이스, RCA와 EMI가 주도했던 방송 규격, 초기 자동차 부품 규격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규격은 외부 공개를 최소화하거나, 라이선스를 통해서만 접근 가능하게 설계되었다. 나는 이 점에서 기업 주도 규격이 오늘날의 ‘비공개 프로토콜’의 조상이라고 본다.

    이 규격들은 경쟁을 촉진하기보다는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규격을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는 주체가 제한되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생태계를 특정 기업 중심으로 고착화했다. 기술의 확산 속도는 느렸지만, 규격을 지배한 기업은 장기간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구조는 오늘날 표준화 이후의 개방 경쟁과는 전혀 다른 세계다.


    표준화 기구의 등장과 기업 규격의 단절

    표준화 기구의 설립은 기술 진보의 필연적 결과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를 산업 권력 구조의 강제적 재편으로 본다. 기술이 복잡해지고 산업 간 연결성이 커지면서, 특정 기업이 규격을 독점하는 방식은 점점 비효율적이 되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중립적 표준화 기구였다.

    표준화 기구는 기업 주도 규격의 권력을 분해했다. 규격은 더 이상 한 기업의 자산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공공재로 재정의되었다. 이 전환은 기술 발전에는 긍정적이었지만, 동시에 기업 주도 규격이라는 존재를 역사 속으로 밀어냈다. 나는 이 지점에서 희귀성이 발생한다고 본다.

    표준화 이후에는 다시는 동일한 형태의 기업 독점 규격이 등장하기 어렵다. 규제, 경쟁법, 글로벌 공급망 구조가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표준화 기구 이전의 기업 주도 규격은 제도적으로 재현 불가능한 산물이다. 이 점이 이 규격들을 단순한 ‘옛 기술’이 아니라, 특정 시대에만 존재했던 구조적 유물로 만든다.


    역사적 희귀성의 핵심: 재현 불가능한 권력 구조

    나는 기업 주도 규격의 희귀성을 기술 자체보다 그것이 탄생한 권력 구조에서 찾는다. 오늘날 동일한 기술 사양을 문서로 복원할 수는 있어도, 그 규격이 작동하던 환경은 재현할 수 없다.

    당시에는 규격을 거부할 수 있는 대안이 거의 없었다. 소비자, 정부, 다른 기업 모두 특정 기업의 규격에 적응해야만 했다. 이는 기술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이처럼 비대칭적인 선택 구조는 현대 산업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 점에서 기업 주도 규격을 ‘기술의 화석’이 아니라 ‘산업 권력의 화석’으로 본다. 이 규격들은 당시 기업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그리고 제도가 얼마나 미성숙했는지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높은 역사적 가치를 갖는다.


    학술·산업적 재평가의 흐름

    최근 기술사, 경제사, 디지털 고고학 분야에서는 표준화 이전 기업 주도 규격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현재 플랫폼 독점 논의를 이해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라고 본다.

    오늘날 거대 플랫폼이 비공개 API, 독자적 생태계, 폐쇄적 규격을 통해 시장을 통제하는 방식은 과거 기업 주도 규격과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차이는 제도와 기술 환경일 뿐이다. 따라서 과거 규격을 연구하는 것은 현재의 독점 구조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표준화 기구 이전 기업 주도 규격은 학술적 희귀 자산이자, 산업 전략 연구의 핵심 사례로 재평가되고 있다.


    결론

    표준화 기구 설립 이전 기업 주도 규격의 희귀성은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합의 이전에 권력이 기술을 규정하던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았고, 규격은 협상의 결과가 아니라 지배의 도구였다.

    나는 이 규격들이 오늘날 다시 만들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진정한 희귀성을 가진다고 본다. 기술은 복원할 수 있어도, 그 기술이 작동하던 권력 구조는 복원할 수 없다. 바로 이 점에서 표준화 이전 기업 주도 규격은 기술사적 유물이자, 산업 권력사의 결정적 증거로 남는다.